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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생활에서 잊지 못할 일] 거울 같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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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소·강원 원통고 시인
기사입력 2018-10-11

 

거울 같은 아이가 있다. 광화문에서도 만나고 여의도에서도 만나고 청와대 앞에서도 만나는 아이. 내 기억 속에는 언제나 푸릇푸릇한 고등학생으로 머물러 있지만, 어느덧 중년을 건너고 있는 아이. 그 애를 만난 건 쥐라기 공룡의 도시 태백에서였다. 아직 여자애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수업을 할 때, 음악실도 변변치 않아서 기타를 둘러메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하던 때, 중학생 그 애를 처음 만났다.
 

태백에도 공부께나 한다는 아이들이 가는 여자고등학교가 따로 있기는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줄곧 1등을 하던 그 애는 그러나 여고 대신 집 가까운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중·고 병설이었던 그 학교에서 나도 그 애를 따라(?)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탄광촌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교사에게 묻는 말이 있었는데 "선생님, 언제 가실 거예요?"였다. 당시 탄광촌은 유배지 같은 곳이어서 승진을 계획하는 교사들을 제외하곤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군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그 학교로 복직을 해서 담임을 맡았던 반의 경우에는 내가 네 번째 담임이었을 정도였다.
 

고등학생이 된 그 애는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늘 1등을 지켰다. 그런데 그 애가 좀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행평가'라고 하지만 그때는 '실기평가'라고 했는데, 평가는 언제나 공개였고 평가 후에는 점수를 확인하도록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애는 "제가 어떤 실수를 했어요?" "왜 제 점수가 이것 밖에 안 돼요?" "제가 oo보다 못 했어요?"를 묻곤 했다. 나는 그 애가 그렇게 사사건건, 점수와 관련된 건 뭐든지 따지고 든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애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좀 비약적이고도 과도한 일장훈시를 하곤 했다.
 

"그래, 공부 잘해서 유명 대학 나오고, 공부 잘해서 판·검사 되고, 그러다 어찌어찌 정치판으로 신분 이동을 한 놈들 중에 진정으로 민중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든? 그런 놈들 봤니? 공부를 좀 못하면 어떠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공부에 관한 한 무한대의 욕심을 가졌던 그 애를 향한, 지금 생각해도 지나친 '질투'였다.
 

대학생이 된 그 애를 우연히 만난 건 집회 차 상경했던 어떤 지하철 역사였고, 필연으로 만난 건 그 애들이 고등학교 졸업 20년인가를 기념해서 모인 동창회에 초대를 받아서였다. 나는 그 애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했고 그 애는 내게 "선생님, 저도 전교조 조합원이에요."라는 선물을 주었다. '저도'라는 말, 채탄부가 캐낸 종류가 다른 원석 같았다. 그리고 그 애에게 '미워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그 애는 중년답게 웃어주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제가 좀 그랬거든요. 교사가 되고 나니까 ㅎㅎ…."
 

지난 전국 대의원대회에서는 대의원으로 참석한 그 애를 만났다. 단단히 여문 마늘 같은 아이, 어떤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그 애를 먼저 염두에 두게 된다. 얘야, 우리 잘 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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