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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북한사회주의 교육의 원형과 변용

북한의 초중등 의무교육제를 중심으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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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 따돌림사회연구모임대표
기사입력 2018-10-11

 

최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관계 발전이 진행되고 있는 이때, 북한의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사회주의 혁명, 즉 모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없애고 전 인민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로 만든 1958년부터 북한은 산업화된 사회주의사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건설은 인간개조, 자연개조, 사회개조라는 3대 개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간개조를 통해 북한주민들이 모두 공산주의적 새 인간이 되고 이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단결하면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서 김일성은 사대주의, 교조주의, 수정주의를 배격하는 주체 확립과 혁명적 군중 노선을 사회주의 건설 노선으로 정하였고, '하나는 전체를 위해서 전체는 하나를 위해서'라는 구호 아래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일으켰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노력동원이기도 하지만 사상혁명을 앞세우면서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동시에 요구하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공업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났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을 통해서 교육을 포함한 북한 특유의 주체형 사회주의 체제의 원형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북조선인이 탄생했다.
 
천리마작업반운동과 9년제 의무기술교육제
 

천리마작업반운동이 일어났던 천리마시대(1956-1973)에 요구되었던 공산주의적 새 인간의 구체적인 교육적 인간상은 천리마작업반장이었다. 천리마작업반장이 갖춰야 할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혁명과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심, 김일성과 항일빨치산들이 이룩한 혁명전통과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지닌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계급화 즉 자발적으로 생산 노동을 해야 하고, 적대계급을 증오하는 계급의식을 지닌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주체사상과 당이 요구하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산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넷째, 하나는 전체를 위해서 전체는 하나를 위해서라는 집단주의 원리를 체득한 집단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이 확고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사회주의적 애국주의). 여섯째, 사회주의 생활양식(위생, 청결, 절약, 이웃 간의 협동, 동아시아적 신가정윤리, 겸손, 검소, 소박)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적 인간상과 교육내용을 구현하기 위하여 김일성은 수정주의 교육과 교조적인 체벌과 처벌 위주의 훈육방법을 중단시키고,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면서 교원의 주도적 역할과 학생들의 자립적 활동을 적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깨우쳐주는 교수교양(설명, 해설과 설복, 이야기, 담화, 토론과 논쟁, 문답식방법) △긍정감화(모범본받기, 교원의 이신작칙<솔선수범>, 시범보이기, 칭찬과 표창) △직관교육(직관물, 영상 등) △실제활동(연습, 실험, 실습, 실천활동, 생산노동 등) △자체학습(방과 후 자율학습, 연구소조 등) △자체수양(생활수첩, 일기, 글짓기, 독서 등)을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정치사상교양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다. 첫째, 지도자의 위대성, 지도자에 대한 충실성 교양과 주체사상 교양, 사회주의 생활양식 교양은 주로 '김일성원수님 어린시절이야기', '김일성원수님 혁명력사'가 도덕으로 과목화되었으며, 혁명전통교양은 주로 항일유격대원들의 경험과 생활의 총체가 담겨있는 항일 유격대원들의 회상기에 대한 독서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거점(김일성원수님혁명활동연구실,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 혁명박물관, 혁명사적관)에서 이루어지는 학습회, 해설모임, 김일성에 대한 덕성실기, 항일유격대회상기 연구발표모임,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 답사(좌담회, 상봉모임, 기념식수, 기념사진촬영, 우등불모임, 숙영, 행군, 참관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예체능 교육에 있어서는 1인 1기, 1인 1악기 등을 요구하였으나, 이 모든 교육은 개인적 활동보다는 집단주의, 즉 군중체육, 국방체육, 집단체조, 집단무용, 군중문학, 군중예술을 위해서 요구되었다. 사회정치활동, 예체능교육, 과학기술교육은 평일에는 점심식사 후(각자 집에서 점심식사 후 다시 등교) 일정한 시간을 과외(소조)활동에 정규적으로 할애함으로써 보장되었으며, 토요일에는 소년단의 날, 사로청의 날로 삼아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학습반과 과외(소조)활동은 공휴일이나 방학 중에도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외활동은 사회교양기관인 학생소년궁전, 학생소년회관, 도서관 등에 의해 물질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교수교양 방법들을 뒷받침한 것은 숙제와 새로운 평가방법이었다. 첫째, 대부분의 수업은 그날 수업과 관련된 정치사상교양과 숙제검열로 시작해서 숙제제시로 끝을 맺었다. 교수과정에서 담화과정을 통한 학과토론, 실험실습, 연습을 통한 검열 등 수행평가를 중시했다. 이는 학생들이 정기시험에 얽매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기시험도 필답, 구답 시험을 활용하였다. 북한은 채점법으로 10단계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5단계(우리의 수우미양가) 채점법이 가장 교육적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정착시켰다. 둘째, 무수한 인정기제와 체계를 만들었다. 찬성, 칭찬, 포상을 할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벽보나 학교 영예의 게시판에 알리고, 신문이나 잡지에 싣기도 하고 집단적으로 축하와 환영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영예등록장에 기록되었고, 소년단시절의 업적은 사로청(지금은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명칭 바뀜)에 가입할 때 인계되어 사로청에서의 분공(역할과 책임)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사로청의 기록은 다음 단계인 입당의 근거자료가 되었다. 북한에서 입당은 최고의 인정기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추동한 것이 교육부문의 대중운동인 천리마학급(성적뿐만 아니라 소년단 활동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모범학급(최우등반 5단계 채점, 모든 학생들이 최우등 또는 우등이 되어야 한다) 칭호 쟁취운동이다. 성적이 좋거나 능력이 있는 학생, 소년단의 분단장과 간부들은 자기성적과 예체능, 실습능력을 올려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적이 낮거나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도와서 수준을 높여줘야 하며, 행실이 나쁜 학생들의 행실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천리마학급, 모범학급 칭호를 얻을 수 없었다.
 

이러한 교육정책은 북한의 교원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교사 특히 담임교사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교사집단은 김일성에 의해 혁명가 칭호를 받았다. 교사들은 대개 40명의 아이들에 대한 집체적 지도와 개별지도, 방과 후 지도, 가정방문뿐만 아니라 학생들보다도 더 많은 사회정치활동, 조직활동, 학습뿐만 아니라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교재계발과 학교시설개선을 위한 온갖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고된 생활을 하였지만, 사회적으로 매우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다. 김일성은 성적 좋은 학생들이 사범대, 교대로 진학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현재도 북한에서 과학영재들 다음으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사범대, 교대, 의대를 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대학진학교육에 집중했던 인문계고등학교(고급중학교)를 없애고, 대신 중등기술학교(2년제) 및 고등 기술학교(2년제)체제를 세웠다. 이로서 단선제인 9년제 기술의무교육제(인민학교 4년-중학교3년-중등기술학교2년)가 완성되었다.
 
3대 혁명 붉은기 쟁취운동과 11년 의무교육제
 

사회주의 산업화를 달성한 김일성은 고도산업화를 위해 유치원 1년,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으로 이루어진 11년 의무교육제를 설계하였다. 후계자 김정일은 11년 의무교육제를 완성하였다. 김정일은 대중운동으로서 천리마작업반운동보다 더 심화된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요구하는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11년 의무교육제의 교육적 인간상은 천리마기수에서 3대혁명붉은기수로 바뀌었으며 천리마학급, 모범학급은 영예의 붉은기학급, 영예의 모범초급단체 등으로 명칭도 달라졌다.
 

혁명화수단으로서의 조직생활의 중요성이 배가되었고, 정치사상교육은 마르크스주의적 주체사상에서 김일성주의로 바뀌었으며,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효성에 대한 요구를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을 위한 10대원칙을 통해서 더욱 강화하였다. 영도자 김일성은 절대화, 신격화되었다. 후계자인 김정일의 위대성, 충실성에 대한 과목도 등장했다. 또한, 김정일이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개방과 붕괴에 대응해서 내놓은 조선민족제일주의로 인해 혁명 전통뿐만 아니라 민족적 전통에 대해 더욱 강조되었다. 천리마시대에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부정되었던 민족적 전통과 문화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게 되고 확산되었다. 또한, 김정일은 학습제일주의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사상과 함께 실력을 중시하였고, 학생들에게 과학교육과 외국어, 한문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전반적인 기초기술지식과 기초기술을 익히도록 하였다.
 

천리마시대에 집단주의, 평균주의를 강조하였다면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적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점차적으로 학생들의 소질과 재능을 강조하였다. 예체능계학교, 외국어학교 그리고 혁명유자녀들이 다니는 혁명학원도 선발에서 진급에 이르는 과정을 체계화하고 교육내용도 질적으로 강화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특별학제를 과학분야로 확대했다. 또한 대상학생들에 대한 조기선발에서 진급, 사회진출까지의 절차와 기준을 엄격하게 세웠고, 일반학교와는 다르게 과학교육에 집중하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첨단시설, 첨단 교수법을 받아들였다(제일중학교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의 뛰어난 교원, 연구사들을 겸직교사로 임명하여 최신과학기술에 관한 강의를 정규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고, 개별교육을 강화하였다. 속성교육을 주기 위해서는 해당대학들에 예비반과 중등반, 특설반도 세워졌다.
 

수재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학교에서도 첨단 교수기자재, 새로운 교수법, 지능교육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반학교와 수재교육기관의 교육환경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로써 천리마시대에 구축된 극단적인 평균주의의 토대가 교육부문에서도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만리마 운동과 12년 의무교육제
 

김정은은 김일성의 천리마운동, 김정일의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에 이어 자력자강, 최첨단, 세계제일을 요구하는 만리마운동을 주창하고, 북한 주민 모두에게 만리마기수가 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핵무력완성을 선언하고 경제건설을 외치고 있는 김정은은 사회주의 강성국가(사회주의 문명국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학제로서 12년 의무교육제(초등과정이 1년 늘어났다)를 제안했다.
 

김정은은 전시대와 마찬가지로 사상교양을 앞세우는 한편 과학교육과 영어교육 그리고 지능계발, 지능교육을 더욱 강조하면서 모든 학교에 최첨단시설과 최첨단교수법을 도입할 것으로 보이지만, 12년 의무교육제가 전시대의 11년 의무교육체제와 어떤 차이가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평화통일의 시대를 맞이하는 김정은시대에 북한 교육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는 예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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