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인|터|뷰| 30년 만의 만남, 가수 정태춘이 전교조에게

'교사의 노동권은 인간 노동권의 상징이다'

- 작게+ 크게

김상정
기사입력 2019-04-12

 

 지난 3월 26일 저녁 6시 서울 여의도에 있는 KBS공개홀 앞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1989년 당시 해직되었던 교사들이 모였다. 89년 전교조 단식농성장인 명동성당에 기타 하나 덜렁 메고 나타난 당시 '잘 나가던대중 가수가 있었다가수 '정태춘'이다이날은 KBS 열린음악회 '정태춘·박은옥 특집공연이 있는 날전교조 해직교사들은 '5.18'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89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전교조 지지공연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를 주도했던 가수 정태춘을 지난 5데뷔 40주년 기념 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년만의 만남'이다.

 

▲ 4월 5일 오전 10시 '정태춘 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 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만난 가수 정태춘은 "선생님들과의 연대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89년 당시 해직되었던 노교사들이 퇴직한 후 힘들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오늘의 교육> 최승훈 기자

 

 명동성당에서 만난 전교조 해직교사들

 '5.18', 80년대 초반부터 시민들이 서서히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고 광주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제반의 문제들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876월 항쟁으로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 시대와 함께 깨어나면서 내가 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나서 노래를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확 변하게 됐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변화를 원하는 시민들과 연대하고 부문 운동들과 연대하면서 뜨겁게 전교조와 만나게 됐다. 그간의 상상력이나 인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교사들의 투쟁, 교사들의 단식, 그리고 명동성당, 시민들의 암묵적인 지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분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명동성당 단식농성장을 찾아 공연을 했고 '누렁송아지'라는 공연이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누렁송아지는 약간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진, 약간의 사회적인 문제의식 정도를 담은 나 개인적인 공연이었다. 그게 확실하게 정치적인 공연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 전교조와의 만남이었다. 비로소 '누렁송아지'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제반 모순들, 모순 속에 놓인 교육상황, 그리고 교사들의 민주화 의지나 사회변화의 열망들,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담긴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전교조 지지'를 노래하다

 전국 17개 대학에서의 19회 공연, 30만명이 집결한 '누렁송아지' 공연은 대부분 국립대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졌다. 우리 기획사와 전교조, 전국의 총학생회, 그리고 극단 '현장'이 같이 만들어 낸 공연이었다. 내가 환골탈태하는 굉장히 특별한 공연이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면서 뭔가 침잠하거나 사색적인 노래들만을 부르다가 비로서 팔을 흔들게 되고 구호를 외치고 아주 거친 이야기들, 거친 목소리, 이전까지는 나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가 그 시기에 일어났던 거다. 사람들이 굉장히 낯설어했다. '시인의 마을', '촛불', '북한강에서', '떠나가는 배'이런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무대 위에서 개량 한복을 입고 서서 북을 치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황당해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그런 변화가 나 자신이나 모두에게 놀라운 것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행이 되는 과정이었다. 나약한 소시민, 자기 속에만 빠져있는 예술가. 그 사람이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간 거다. 내 안의 세계에서 나와서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거기서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대에서 대신하고, 내 안에서 나오는 분노나 열정들을 거침없이 표현을 했으니 변화의 큰 변곡점이었다.

 

 ', 대한민국' 그리고

 ', 대한민국' 앨범을 낼 때와 '92년 장마, 종로에서' 낼 때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아 대한민국'은 민민 진영의 투쟁이 최고조에 올라갔을 때였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낼 때는 싸움들이 쇠잔해지고 지도부들이 잡혀가면서 권력지형이 재편되고 일부는 제도권으로, 일부는 변절도 하며 어수선하게 상황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래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만들 때인 93년도에는 패배감을 가지고 있었다. 8-90년대를 쭉 끌어왔던 싸움의 힘이 다 떨어지고 겨우 얻어낼 수 있는 일부부만 얻어낸 채 다 흩어진 상황이 됐다는 거다. 그럴 때에 세계화며 뭐며 자본주의 진영의 승전가가 울려퍼지고 큰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들의 싸움도 그런 식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문명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같이 명랑해질 수 없었다. 사회가 그렇게 바뀌면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많은 고통들이나 모순들이 누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상적으로는 명랑하다. 미디어가 그런 것만 퍼트린다. 그런데 낙관론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경제도 성장중심이나 분배 중심이냐고 했을 때 더 성장할 것이라는 쪽으로 끌고 가면서 낙관론이 지배했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명랑한 노래를 만들 수가 없었다. '건너간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등 우울한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런 우울한 노래들이 시장에서는 먹히지 않았다. 시장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시디를 사거나 카세트를 샀던 오프라인 매장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온라인에서 기술의 발전도 있었고, 산업적으로는 그것이 경제를 운영하는데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다. 저작권자나 제작자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너무나 적었다. 초기 단계에 불법들이 횡행하니 앨범을 제작하고 수익을 하나도 거둘수가 없었다. 시장의 변화도 있지만, 대중들의 정서의 변화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접었다. 문명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다보니 좀 다쳤다. 다쳐서 아팠다.

 

 2016년 광화문, 촛불광장에 서다

 2012년도에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라는 앨범을 냈다. 내가 노래를 접었다고는 하지만 박은옥씨를 위해서 앨범을 만들려고 2011년경에 잠깐 곡을 썼다. 앨범이 나왔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콘서트도 했다. 그리고 2016, 촛불 광장에 한 번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광화문 사람들 속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내가 자청한 거였다. 짤막하게 글을 써가지고 나갔는데 나는 그 속에 녹아들지는 못했다. 물에 뜬 기름이었다고나 할까. 내 마음은 그런거였다. 박근혜나 한나라당, 그 일부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 가는 방향 자체를 틀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사회가 가야하는 방향 자체를 바꿔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노동권을 가르치는 교사

 얼마전 지역에서 전교조 행사가 있었다. '교사의 노동권은 모든 인간의 노동권의 상징이다'라고 붓글을 써서 보냈다. 교사를 통해서 노동권을 알지 않으면 어디서도 알 수가 없다. 교사의 말과 실천을 통해서 학생들이 인간에게 부여된 노동권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나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통제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더 열린 상상력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면 좋겠다. 그게 예술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사상적인 것이든. 그리고 합법화 투쟁 더욱 분발해주시라. 내 안에 전교조를 향한 연대감은 여전하다.

 

 

▲  가수 정태춘에게 노래는 세상과 만나는 무기이고 세상과 만나는 중간다리였다. 지난 10년간 그는 붓글을 쓰며 세상과 만나고 있다. 붓글도 시고 노래도 시다. 노래하는 시인이었던 그는 이제 붓글을 쓰는 시인이다.  © 교육희망은 가수 정태춘님이 전교조 초대 문화국장이었던 이영국 교사에게 보낸 사진을 지난 12일  전해받았다. 

 

 요즘 자주 부르는 '리철진 동무에게'라는 노래는 늘 전교조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과거 정권이나 지금 정권이나 여러 면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이, 촛불로 인한 사회적인 성과나 진일보하는 성과들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도 아주 말이 안되는 상황인데 새로운 정부에서도 해결을 못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더 분발해야 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교육희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