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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논과 밭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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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희 서울천왕초
기사입력 2019-05-03

 "선생님, 이렇게 심는 거예요?"
 "선생님, 볍씨 심고 물을 주어야 하나요?"
 "선생님, 감자가 많이 자랐어요."
 "선생님, 상추 따서 삼겹살 싸먹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은 질문하고 재잘대면서 텃밭을 놀이터 삼아 12살 농부가 되어 본다. 오늘은 지난 주말 여주에 사시는 선생님께서 싹 틔워서 나눠주신 볍씨를 종이컵에 심고 잘 자라 모가 되기를 소망하였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싹 난 볍씨를 자세히 살펴보니 작고 푸른 싹과 길고 하얀 뿌리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다, 이 안에 생명이 숨어 있었구나!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우리 학교에서 마을 논을 만든 것은 지난 2017년 봄이다. 전임 학부모회장님께서 구청과 잘 알고 지내는 터라 폐쇄된 마을 연못을 텃논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돌도 많고 흙도 논에 적합하지 않았는데 새로 흙을 붓고 물 빠짐 실험을 하고 마을 학부모와 아이들이 발 벗고 들어가 써레질을 한 후 첫 모내기를 하였다. 그 해 봄은 무척 가뭄이 심하여 모가 타죽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비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다행히 심한 가뭄에도 벼의 생명력은 끈질겼으며 첫 수확을 하였다. 논은 마을 사람들에게나 학교 구성원들에게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배움터가 되었다.
 우리 학교처럼 운 좋게 텃논이 학교에 있다면 좋겠지만 평범한 학교에서도 벼를 재배할 수 있다. 우선 밑이 막힌 고무나 플라스틱 상자에 진흙과 흙, 퇴비를 넣고 진흙 상태로 만든 후 물을 대어 모내기한다. 크기가 작아 6번 정도 모를 꽂으면 다 차지만 다 자라면 찰랑찰랑 하는 풍성한 벼이삭 그루가 된다. 예산이나 인력이 필요한 상자 논이 없다면 밭에서도 벼농사가 가능하다. 역사적으로도 모내기 법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볍씨를 직파하여 밭 벼로 키웠다고 하니 도전해 보자. 봄, 여름, 가을 가꾸고 보살핀 벼에 나락이 맺히면 그 쌀 한 톨에 우주의 무게가 들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충남 아산 거산초의 경우에는 직접 볍씨부터 발아시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어린이들이 모내기를 하는데 마을의 논이 곧 또 다른 학교가 되는 것이다.
 요즘엔 학교 텃밭을 하지 않는 학교들이 거의 없다. 우리 학교도 5학년 실과 시간과 연계하여 봄에는 감자, 가을에는 배추를 중심으로 심고 그 주변에 절기에 따라 작물을 심는다. 가장 먼저 심는 완두콩은 벌써 10센티가 넘게 자랐고 시금치는 곧 수확을 앞두고 있으며 상추들은 푸른 꽃처럼 제법 커졌다. 곧 있으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기 오이가 덩굴을 타고 올라가 주렁주렁 싱싱한 오이가 열릴 것이다. 밭에서 바로 따 먹는 오이는 단 맛이 나는데 수확한 오이를 조금씩 잘라서 어린이들과 함께 아사삭 먹는 맛은 정말 일품이다.
 
 치유와 배움의 놀이터 학교 텃밭
 여름 방학이 가까워 오는 하지에는 감자를 캐어 실과실에 가서 간식을 만들어 먹으며 씨감자에서 근사한 요리까지 슬로우 푸드를 체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학교 구성원들 모두에게 텃밭은 치유의 공간이다. 등하교 하면서 텃밭 작물을 살피고 급식을 먹고 천천히 거닐며 작물들과 대화하거나 물을 준다.
 학교에 과학실, 영어실, 강당이 있는 것처럼 반드시 텃밭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물을 가꾸고 보살피는 배움은 도시 어린이들에게 기다림의 미학과 보살핌의 윤리를 하루하루 스며들게 한다. 그래서 텃밭과 텃논은 교실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가치들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익히게 해주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공간이다.
 조진희 · 서울 천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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