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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시 교단에 선 페미니스트 교사, 최현희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성취된 사회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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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기사입력 2019-07-29

여기 교육 활동을 침해당한 교사가 있다. 그로 인해 교단에 설 수 없었던 교사는 휴직을 하고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대상은 언론 권력과 보수학부모 단체였다2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 조선일보는 정정 보도를, 보수학부모 단체는 민사상 책임을 지게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최현희 조합원의 이야기다.

 

최현희 교사는 20176월 인터넷 매체 닷페이스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영상이 보도되자마자 최 교사를 향한 악의적 공격이 시작됐다. 페미니즘을 비난하던 인터넷 이용자들은 무분별하고 광범위한 신상털기를 시작했고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익명성을 무기로 한 온라인상의 공격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일부 보수단체 소속 학부모들은 그의 학교까지 찾아가서 고성을 지르는 등 적극적인 항의 행동을 했다. 조선일보는 2017825일자 신문에 수업시간에 퀴어축제보여준 여교사, 그 초등교선 , 너 게이냐유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일부 보수 학부모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최 교사가 10여 년간 올린 만여 개의 트윗은 특정 부분만이 도려내 져 남초 사이트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언론은 그것을 페미니즘 백래쉬의 훌륭한 먹잇감으로 둔갑시켰다. 

 

최현희 교사는 교육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고 병가에 이어 휴직을 했다. 한 교사가 교육 활동 침해를 당했으나 그 싸움은 오롯이 교사 개인의 몫이었다. 교육당국은 교사의 처벌에는 냉혹했으나, 교사를 구제하고 보호하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니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16개월 휴직 기간 중에도 공격은 계속됐다. 최현희 교사는 전교조 시·도지부에서 페미니즘 관련 강연을 했고, 경향신문에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이란 제목으로 201712월부터 20184월까지 칼럼을 연재했다. 허위로 무장한 마녀사냥식 공격에 적극 대응한 것이다. 또 조선일보와 소속기사를 상대로 정정 보도와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시작했다. 201810261심에서 승소한 이후 지난 6192심에서는 조선일보 정정 보도 등을 포함한 강제조정이 확정됐다. 그리고 622, 조선일보는 최현희 교사에 대한 정정 보도문을 게재했다. 보도 이후 110개월 만이다. 앞서 5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을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 교사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냈다. <교육희망>은 최현희 교사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  지난 7월 16일 오후 4시경, 다시 교단에 선 최현희 교사를 만났다.   ©김상정 기자

  

- 재판 결과는 만족할 만 한가?

완전히 시원할 만한 판결은 아니었다. 소송을 2017825일에 시작했고 110개월이 지났다. 결과가 너무 늦게 나왔다. 그동안 엄청난 일을 겪었는데 짧은 기사 몇 줄로 정정 보도를 하는 데 그쳤다.”

 

- 재판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법정에서 주요 쟁점은 최현희 교사가 메갈리아 교사인가 아닌가였다. 메갈리아 회원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증명해야 했다. ‘메갈리아라는 말만 나오면 자동반사적으로 경기와 히스테릭한 반응이 나오던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말로 낙인을 찍고 문제적 교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조선일보도 메갈리아를 언급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기사에 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가입한 적도 없는 메갈리아 사이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한참 전인 2016년에 폐쇄되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 재판 당시에는 메갈이라는 단어는 자체가 선동이나 왜곡의 언어로는 이미 낡아 있었다. 더구나 법정에서는 트위터, 해시태그 등등 새로운 매체의 문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것을 하나씩 설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고단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벌이는 싸움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남성의 언어로 여성의 폭력을 입증한다는 것.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서 승리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실감했다.”

  

- 16개월 휴직 끝에 올 3월에 복직했다. 어떤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데일단은 참 좋다. 학기 초는 힘들었다. 나는 교사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나 역시 더욱 스스로에게 가혹해졌다. 내가 좋은 교사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타인보다 나 자신에게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지?’라고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강박적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오히려 힘을 빼고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학교 오는 게 편안하고 학생들과의 역동적인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얻고 있다. 학년 초 나를 향한 우리 반 한 학부모님의 적대감과 불안이 신뢰와 지지로 바뀌는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성공적으로 복직에 안착한 것 같고 남은 건 약해진 체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평등, 생태, 인권, 환경, 성평등, 평화가 담긴 책들로 가득한 책장 앞 선 최현희 교사     ©김상정 기자

 

- 교육청을 포함한 교육 당국의 대처는 어떠했나?

사건 직후 전교조 서울지부와 학교 업무팀 교사가 참여한 교육청 면담에서 이 사건을 교권침해 사례로 규정했고 피해교사에 대한 보상도 약속했다. 그러나 그 뒤로 어떠한 지원도 없었다. 교사가 속한 지역교육청, 시교육청, 작게는 학교가 교사 보호에 얼마나 무책임하고 소극적인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다. 전교조 여성위원회와 학교 밖 시민들이 연대를 강하게 해줘서 그 힘으로 버텼다. 내가 페미니스트 교사가 된 것도 페미니즘 이슈가 확산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가능했듯, 백래시에 대처했던 힘도 모두 사회적 변화의 물결에서 나왔지, 교육 관련 부처가 한 일은 전혀 없었다.

 

교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한 차례 인터뷰로 이토록 교육권을 탄압받고 악의적인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야 하는지. 당시 지역교육청은 일부 학부모들의 요구로 내부 감사를 실시했다. 학교의 교사 개인 컴퓨터도 조사하고 동료 교사 면담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악의적으로 유포된 소문에 대응되는 자료가 없었을 테고 해당 교사에게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사안을 책임있게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애초에 없었고 형식적인 절차를 이행 중이라는 걸 보이면서 그저 소요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직했을 때도 교육청과 학교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없었다. 분명하게 교사가 인권과 교육권 침해를 당한 사례이니 학부모들은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온갖 낙인을 받은 이상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명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내가 내 교실에서 복귀를 위해 노력했듯 학교나 교육 당국이 해야 할 몫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다시 학교에 복직하는 것만으로도 학교가 다시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소요가 또 일어날까? 민원이 다시 일어날까?’라는 그런 불안이나 긴장이 있을 뿐이었다. 복귀했을 땐 막상 아무 일도 없었다. ‘학교가, 교사들이 안하무인 보수단체나 학부모들의 민원이나 공격에 그렇게까지 위축되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조선일보 정정 보도 이후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정정 보도 부분을 인용한 뒤 이로써 그간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정도의 내용이었다. 그런 피해를 당한 교사가 법정까지 가서 소송을 감내해 얻은 결과였다. 소극적인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정말 외롭다는 생각을 했고 소외감마저 들었다.”

  

- 공감을 넘어 선 연대를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연대라고 말하면 거창하게 느껴진다. 뭔가 조직을 하고 서명을 돌리고 탄원서를 돌리고 스피커를 갖고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자기 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자기 바로 눈앞에 떨어진 시대의 이슈였고 바로 곁에서 벌어진 생생한 역사이기도 했다. 공동체에 힘든 시련이 주어지면 그 사이에서 이견이 생기고 갈등도 생기고 인식의 차이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일로 학교 이름이 거론되고 학부모가 고성을 지르며 학교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이 모든 걸 준비 없이 겪어냈다. 주변 동료 교사들도 이 엄청난 피해를 함께 짊어졌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고생했다. 그 과정에서 공감이나 위로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내가 바랬던 건 그것을 넘어선 조직적이고 사회적인 연대였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 함께 생각해 볼 화두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그 정도면 됐는가라는 성찰이다.

 

전교조 조합원 교사 개개인의 노력을 통해 전교조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도 든다. 전교조는 페미니즘 이슈를 전면적으로 끌어안지 못하고 있는 반면, 페미니즘 담론은 최근 하루가 다르게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고 있다. ‘이대로 전교조가 보수화되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전교조에 대한 나의 애정은 무엇인가, 왜 전교조를 이리 안타깝게 생각하는가. 이 마음은 어디서 왔고 왜 끝나지 않는가. 아마 미련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정도는 기대하고 신뢰했었기 때문에 실망도 하는 거고, 실망했다면 돌아서면 되는 건데 늘 찐득한 감정이 남아 뒤를 돌아보게 된다.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정체성이 나한테는 꽤 컸나 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 사회가 가할 수 있는 온갖 폭력에 맞서 싸웠다. 돌이켜본다면?

재판까지 해보니 사실은 별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개 속에 있을 때는 뭐가 날아올지 몰라서 두려움이 증폭되고 그 끝을 모를 때 가늠할 수 없는 공포가 있지만, 정작 여러 가지 일을 직접 겪고 여기까지가 끝이구나 하는 순간이 오면 별 게 아니었군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재판도 그렇고 학부모가 학교와 교육청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주요 일간지에 보도가 되고 나니 그 이상 더 당할 일이 없었다. 물론 남초 사이트에 악플이 도배되고 신상이 유포되고 이런 건 페미니즘 백래시의 전형적인 패턴이니 오히려 담담하게 겪었고.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겪어봤고 정말 별일을 다 겪었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거였다. 가족과 동료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압박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행동을 멈추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것 때문에 여러 번 멈추어 섰으니까. 하지만 그런 압박감조차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게 되더라. 지금 나는 학교로 돌아왔고 지금은 교실의 일상이 즐겁다.

 

앞으로는 교사가 같은 이슈, 비슷한 사건으로 나처럼 큰일을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시작이어서 그랬던 거다.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걸고 목소리를 낸 초등학교 교사에게 사회는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과 두려움을 여과 없이 퍼부어냈다. ‘좌파, 빨갱이, 메갈리아, 동성애 조장 교사라고 낙인을 찍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직을 동원한 셈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이다.

 

다만 혐오세력이 악의적으로 조직력을 발휘할 때, 교사들이 그에 대한 과한 공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학교를 무너뜨리고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직장을 무너뜨릴 거라는 공포 말이다. 사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별것 없는데 그저 갈등 상황 자체를 불편해하는 거 아닌가 싶다. 겪어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미리 위축되고 긴장하는 건 아닌가. 독재정권과 학교 권력에 맞섰던 것처럼 전교조가 이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교육 실천을 전면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스쿨미투, 그러나 학교는 여전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투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낸 것에 비해 스쿨 미투의 파급력은 크지 않았고 심지어 최근 가해 교사들이 스리슬쩍 복귀하고 있다. 평화를 가장한 폭력의 묵인, 갈등의 회피가 만연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미투 운동은 엄청난 용기와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교사들은 이러한 학생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일선에서는 학생 인권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교사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다라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의 대립 프레임을 빨리 넘어서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 안의 차별과 폭력을 고발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교사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지켜보는 것이 안타깝다. 적극적인 연대와 지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학교의 변화를 향한 의지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 그렇다면 전교조는 어떠했나? 바람이 있는가?

독재 탄압과 비인간적 교육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용감하게 투쟁해온 것이 전교조의 지난 30년간의 역사다. 하지만 전교조의 젊은 세대 페미니스트(소위 영영페미라고 불린다) 조합원은 그 역사를 향수로 간직한 세대가 아니다. 이미 형식적 민주주의가 성취된 사회에서 자랐고 이들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지금의 전교조 주류 활동가들은 이들에게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정권의 탄압 하에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민주주의는 다양한 집단을 대표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

 

또한, 어떤 조직은 존재하는 거 자체가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교조의 정당성은 시대에 맞게 입증되어야 한다. 자신의 나이 권력, 성별 권력 등을 성찰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전교조의 역사를 이어갈 영영페미교사는 없다. 그럼에도 역사가 있는 노조이고 그동안의 공을 존중하여 어떻게든 그 안에서 교육노동운동을 새롭게 해보려고 노력을 하는 영영페미교사가 있다면, 전교조에서는 모든 귀를 열고 그 사람의 존재를 환대해야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넣으면 어떨까?

학생들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는 느낌이라 너무 좋다. 휴직 때는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강의나 원고를 준비하면서 학교와 교실을 많이 떠올렸는데 현재가 아니니 아무래도 관념적으로 흘러가게 되더라. 학생들을 매일 만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참 좋다.”

 

인터뷰를 마치고 최현희 교사와 6학년 학생들이 함께 교육 활동을 펼치는 교실 공간을 둘러봤다. 교실 뒤쪽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작품인 무채색 그림이 한눈에 보인다. 왼편에는 친구를 남녀로 나누지 않기’, ‘여자다운, 남자다운 등등의 말 하지 않기등의 글귀도 눈에 띈다. 교실 앞쪽 칠판 오른쪽에 붙어 있는 학생들과 함께 만든 학급 규칙도 눈에 들어온다.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교실을 위한 학급 구성원들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우리 사회에 그대로 옮겨놔도 손색이 없다.

 

평등과 생태가, 평화가 숨 쉬는 교실을 일구던 한 교사가 무려 2년이란 세월 동안 교실 밖에서 세상과 싸웠다. 교실에 있는 학급 규칙과 문구들은 그 평화롭던 교실을 침범했던 교실 밖 사회에 더 절실하게 필요한 이야기다. 연대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 이상이 어떤 행위를 이행함에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 모두 되새겨볼 말이다. 2년 전, 학생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운동장을 이야기하던 한 교사가 있었다. 지금의 학교는 어떤가? ‘연대라는 말이 다시 떠올려지는 이유다.

 

 

▲  최현희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만든 우리반 인권선언과 학급규칙은 우리 사회의 어느 공동체에서라도 함께 실천하면 참 좋을 내용들로 가득하다. ©김상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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