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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당신은 매화꽃을 닮았습니다  

고 이복순 선생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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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기사입력 2019-10-02

 비가 내렸다. 2019년 9월 12일, 이복순 선생(전주우아중학교)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여정에 나서는 길에 배웅을 나온 이들은 그의 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봤다. 평교사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조합원으로, 교육민주화 운동가의 삶을 살아온 그의 곁에는 수많은 이들의 삶이 함께 했다.


 이복순 선생은 독재에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교육계 비리에 맞서 싸우며 교육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그래서 그를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활짝 여는 매화꽃을 닮았다고들 했다.


 그의 삶은 불꽃이었다고 했다. 이복순 선생의 삶은 매화꽃처럼 아름다웠다. 시린 눈으로 그의 가는 길을 처연히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 그는 불꽃으로 남았다.

▲ 1989년 명동성당 단식 당시의 고 이복순 교사     © 전교조 전북지부 제공

 

 이복순 선생은 군사독재정권이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르던 1983년에 교단에 섰다. 86년 전북교육민주화선언, 87년에는 전국 최초로 4.13 호헌조치 철회 촉구 성명을 발표하고 그해 전북민주교육추진협의회 창립을 주도한다. 89년 전교조 결성과 명동성당 앞 단식농성에 함께하고 그해 8월 16일 전교조 결성 주도 혐의로 파면당한다. 94년 전라중학교에 복직해서 무주, 군산, 익산, 장수, 전주 지역에서 총 36년 6개월의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했다. 전교조 전북지부 여성위원장으로 학교 안팎의 성폭력 사안 해결에 맞서 싸웠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부당한 학교현장을 바꾸기 위해 앞장섰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폭력에 눈감지 않으며 고통받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을 위한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복순 선생은 이 세상과의 이별을 앞두고 사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살아왔던 여정을 동지였던 이들과 정리를 했고 작별하러 찾아온 이들의 손을 꼭 잡았다. 늘 그랬듯이 따스하고 청명한 눈으로 찾아온 이들을 반겼다.


 세상의 모든 이별은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다. 운명하기 전 김영선 교사가 보낸 편지글을 보며 눈물을 보였던 이복순 선생은 그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삶의 끝머리도 아름답게 디자인했다.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 후, 부부의 연을 맺은 이종천 교사는 세 명의 자녀와 함께 그의 삶을 끝까지 지켰다.


 이복순 선생은 지난 9월 10일 오전 7시 44분 별세했고 장례는 전교조 전북지부장으로 치뤄졌다. 11일 열린 추모의 밤에는 집회를 방불케하는 규모로 많은 이들이 비좁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리고 오랜 제자들과 교사들,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은 추석 명절의 시작이었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았다.


 "교육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우아중학교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참으로 행복했다. 그 아이들과 함께 정년퇴직을 맞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많이 아쉽다. 그리고 나 대신 한 사람 더 가입시켜야 했는데…."


 이복순 선생이 전교조 전북지부 활동가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유모차에 있을 때부터의 시위 그리고 박근혜 탄핵 시위까지… 전 엄마와 함께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 싸우러 나갔던 그 수많은 시위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이복순 교사의 딸 이소담 씨가 엄마가 가는 길에 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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