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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인생 '강제 위임' 받은 고3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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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경 · 경기 호원고
기사입력 2019-11-06

"해당 학교의 수험생(전원)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할 수 없음"


 300여 명 학생이 수능 응시를 희망하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응시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수백 명 학생의 인생을 망가뜨린 파렴치한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등 사회적 파장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소송에 휘말릴 것이다. 그 무엇보다 조금 더 살피지 못해 학생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누구도 몇백 명 학생들의 인생을 1년간 유예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위임을 받을 거냐는 제안을 받은 적도 없을 것이며, 그런 권한을 절대 위임받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해당 학생들은 그걸 위임하고 싶을까? 학생들은 그런 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권한을 수행하고 있다, 이 땅의 고3 학년부장들은.


 실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 대비 고등학교 교감 및 3학년부장 연수 자료에 "9.6.(금) 22:00 이전에 수능정보시스템에서 '제출(마감)'하지 않은 경우, 해당 학교의 수험생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할 수 없음"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면 정도의 문제일 뿐 분명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

 

 고3 담임들은 훨씬 가능성이 많은 일에 종사하고 있다. 학생들이 제출한 종이 응시원서를 보고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는 일이다. '3회 이상 점검'하라고 난리를 치면 칠수록 선생님들의 마음은 졸아든다. 등교 잘하는 학생들은 본인 포함해 몇 번이나 확인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은 확인이 정말 어렵다. 등교하지 않아 전화로 의사를 묻고 원서를 작성하신 어느 선생님이 자신이 말한 과목대로 선택되지 않았다며 민원을 제기한 학생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 일도 있다는 협박(?)은 연수에서 꼭 나오는 이야기다. 잘못은 오롯이 선생님의 책임이다.


 모든 고3 담임이 실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응시수수료 문제다. 상담을 통해 지원희망대학과 학생 특성에 맞게 응시과목을 정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응시수수료를 현금으로 직접 걷어야 한다.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 재정운용 기본방향 등을 제시하며 도움을 요청해도 그 흔한 스쿨뱅킹으로 수납하는 것마저 대부분 거절된다. 이런저런 기관에 교사가 학교에서 현금을 수납할 수 있느냐는 질의를 하면 협의해서 잘하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분실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말에 분실하지 않도록 하란다. 수능원서작성, 수시 지원 대학 상담만 제대로 하려고 해도 하루가 부족한데, 여기에 현금 수납까지. 학급당 30명이 6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으니 최대 180개 대학을 선정해야 한다. 전문대는 무제한이다.


 교원임용시험, 모든 지방직과 국가공무원 채용시험, 각종 국가자격증 시험 등의 응시원서는 모두 개인이 인터넷으로 접수하고 있다.

 

미성년자라서 혼자 할 수 없다고? 수능원서접수 마감일에 대입수시원서접수를 시작했고, 학생들은 선생님과의 상담을 참고해서 알아서 지원했다. 그런데 유독 수능응시원서는 왜 개인이 작성해 제출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걸까? 졸업생이나 검정고시 출신자가 원서접수처까지 가서 원서를 수기로 작성하게 하고, 그걸 보고 담당자가 입력하도록 하는 이유는 뭘까? 무슨 이유에서건 출력물이 꼭 필요하다면, 개별 인터넷 접수를 하게 한 후 학교에서 출력해서 교육지원청에 제출하는 정도의 수고로움은 선생님들이 감내하실 것 같다. 내년 8월에는 응시원서 입력 오류에 대한 부담, 응시료 수수에 따른 잡무와 짜증에서 벗어나 진로 상담에 더 집중할 수 있기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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