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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법외노조취소 판결 이끈 강영구·신인수 변호사

학생이었던 이들은 30년 후 교사들의 해고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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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기사입력 2020-10-08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날 시작된 두 개의 소송이 있다. 법외노조처분 취소 소송과 법외노조통보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소송이 그것이다. 전교조가 국가기관을 상대로 싸우는 법외노조 7년 싸움의 큰 축에 치열한 법정공방이 있었다. 결국 법외노조 취소는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일단락됐다. 이 싸움을 이끈 두 명의 변호사가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의 강영구, 신인수 변호사가 그들이다. 그들을 만나 법정 이야기를 들었다.  

 

▲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한 신인수, 강영구 변호사는 법외노조 취소라는 오랜 과제를 끝낸 기쁨을 전했다.     © 손균자

 

 승소 후 제일 먼저 한 일과 소회는?

 

:해직된 분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긴장이 많이 됐었는데 간만에 집에 가서 잠을 푹 잤다. 대법 판결에 따라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 여부와 34명의 해직자 문제가 걸려있는 사건이어서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안도했고 또 하나는 대법판결 내용에서 전교조 측 주장 내용이 상당 부분 원용이 되어 우리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인받았다는 생각에 기뻤다.

  

:같이 고생하신 분들 생각이 많이 났다. 함께 모여서 축하하는 자리가 코로나 상황 속에서 생략됐다. 혼자서 사무실로 들어오는 택시 안에서 마침 신해철과 이승환 노래가 나왔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을 바라봤는데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2009년부터 전교조를 대리하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법외노조 싸움은 규약시정명령이 있었던 2010년부터 시작됐고, 2020년 대법이 선고하면서 딱 10년이 된 시점에 마무리된 거다. 행정안정부는 조합비원천징수를 어렵게 해 돈줄을 묶고, 교육부는 해고하고, 검찰은 기소하고, 국회의원은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고 노조가 전방위적으로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법외노조 통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개인적으로 10년 동안 못 푼 숙제를 풀었다.

  

▲  노동과 교육운동을 고민하며 망설임없이 시작한 '전교조 변호사', 학교 현장의 변화를 꿈꾸는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강영구 변호사     © 손균자

 

법정 공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공개변론에서 이기택 대법관이 선생님들이면 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어기냐? 교육적이지 않지 않냐?”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다. 그때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도우라고 가르치는 게 가장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법정에서 강조한 조합원 총투표는 대단한 결정이었다. 당시 68.59%가 시정명령 거부 의사를 밝혔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가장 교육적인 길이고 선생님다운 행동으로 감동을 주었다. 법정에서 ‘59991명이 9명의 권리를 위해서 스스로 권리를 포기했다.’는 말을 했다. 대법원 판결에 오기까지 그게 가장 큰 힘이었다.

  

:1심과 2심 법정에서 피고가 최후변론을 할 때, 준법을 가르쳐야 될 교사들이 법을 어기고 있다. 엄정하게 심판을 해달라는 얘기였다. 심지어는 재판부측의 일부는 그런 취지로 훈계를 하면서 규약 개정할 생각이 없냐는 말을 했다. 실정법 현행법으로는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게 맞다. 그런데 이건 분명히 악법이다. 왜냐하면 해고자의 조합원자격을 금지하는 건 단순히 해고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조의 존속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조활동을 제일 열심히 하는 이들이 제일 먼저 해고가 된다. 해고가 되면 학교와 조합에서 모두 쫒겨나면 누가 조합활동을 하겠는가. 노조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이 법은 대표적인 악법이다. 그래서 ILO(국제노동기구)도 법조항을 폐지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온 것이다. 악법은 불복종하면서 폐지시키고 바꿔왔던 것이 지금까지 역사였고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긴 법정 공방에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5만 9천 991명이 9명의 권리를 위해서 스스로 권리를 포기’했던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신인수 변호사     © 손균자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이다. 변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강:끝까지 싸운 조합원의 힘 덕분이고, 옆에서 거들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뿌듯하다. 노동법 역사에서 행정관청이 임의로 노조를 해산시킬 수 있는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아예 사라졌다. 노동법 역사에서는 중요한 판례가 되었고, 전교조가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해주신 거다.

 

   왜 변호인이 된 건가?

 

:대학 4년 때 운동말고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운동을 그만둔 비겁한 운동권이었다. 지금도 계속 운동을 하시는 분들께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존경한다. 3 때 국사 선생님이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사립학교였고 그 분은 90년에 해직되셨다. 출근투쟁 같이 하려고 교문에 나간 기억이 있다. 30년 전에는 못 막았지만 30년 후에는 막아냈다. 선고되기 전날 그 선생님 생각이 났다.

  

:경쟁과 입시교육에 힘겨워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탓에 대학 들어가면 입시 폐지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는 삼성을 정점으로 하는 노동시장 서열화와 맞닿아 있다. 변호사가 된 후 노동과 교육운동 사이에서 고민했다. 이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줄 곳이 전교조였고, 망설임없이 전교조 변호사가 되었다.

  

전교조 5만 조합원에게 하고 싶은 말

 

:법외노조 통보 당시 6만이었는데 요즘 조합원 5만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슬프다. 1만이 줄어든 거다. 법외노조 취소가 전교조가 다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꼭 됐으면 좋겠다. 지난 적폐정권이 전교조를 그렇게 죽이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전교조의 존재이유다. 앞으로 전교조가 왕성하고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얼마 전 교육희망에서 잘하고 싶지 않은 아이는 없다는 기사를 봤다. 코로나 상황에서 아이들이 생활습관을 통해서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사의 활동들이 담겨있었다. “, 이런 분들이 조합원이셨지. 이런 분들이 계시니까 전교조가 우리 사회에서 의미가 있는 거지.”싶었다. 앞으로 전교조 선생님들이 날개를 달고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교육 부조리를 바꿔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 길에 변호사로서 활동가로서 같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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