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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북교육 교류 물꼬 트고도 해직된 박미자 교사

국가보안법 7조 5항 이적표현물 소지죄 폐지 위해 “불꽃처럼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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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기사입력 2020-03-11

인터넷 연결이 되는 곳이라면 누구든 언제나 어디서든 검색엔진에 북한이란 단어 하나만 입력하면 북한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자료를 만날 수 있다. 북한의 군사, 정치, 문화와 북한에 사는 이들의 일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까지 나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203,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20년 전인 20006,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정상회담(회담)6·15공동선언문을, 2007년 제2차 회담은 10·4공동선언을 낳았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열린 3차 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으로 이어졌다. 5차 회담에서는 ‘9월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주축으로 한 남북교류가 왕성했던 시기에는 노동, 경제, 여성, 교육 등의 민간교류 또한 활발했다. 2003년 대규모의 남북교육자 상봉 행사가 열리고 이를 계기로 2004년에는 금강산에서 남북교육자 통일대회가 열린다. 당시 남과 북, 해외교사까지 합해 무려 1500여 명에 이르는 교육자들이 이 행사에 참가했다. 이를 계기로 전교조와 한국교총, 그리고 북측의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이 참여하는 6·15남북교육자본부가 구성되고 이어 활발한 교육자 교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2007년까지 대규모로 남과 북 교육자 상봉행사가 펼쳐지고 개성과 금강산에서의 대표자 회의가 연례행사로 진행됐다. 이렇게 한 번의 남북상봉 행사를 치루려면 수없이 많은 실무협의를 거쳐야 한다.

 

남과 북의 교육자 만남이 있기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점검하며 추진했던 교사 중 한 명이 박미자 교사다. 박미자 교사는 올해 대법판결로 인해 세 번째 해직을 당했다. 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   박미자 교사는 2003~2007년 남북교육자 교류를 추진하며 평화통일교육의 가능성을 열었다.   © 김상정


  남과 북의 교사들이 만났다. 그 장을 열었다.

박 교사는 2003년부터 남과 북의 교육자교류가 활발했던 때 남과 북을 오가며 실무협의를 했다. 이후에 검찰에 의해 기소되면서 박 교사는 자신이 남과 북을 오간 회수가 47회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처음 육로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갔었던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기억한다. 남북의 교사들이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역시나 아이들 이야기다. 학교를 안 나오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학생들이 가장 걱정이라며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북한의 교사를 만나고서 그는 남북이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00년 전교조는 북한에 종이가 없어서 교과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북의 제자도 우리 제자'라는 마음으로 종이보내기 운동을 시작한다. 2003년 그가 묵었던 평양에 있는 숙소 한 켠에는 서점도 있었다. 종이로 알뜰하게 제작된 책들을 보면서 종이보내기운동하기를 참 잘 했다라는 생각도 했다. 서점 책장에 진열된 책 중 그의 눈길을 끌었던 건 이념이나 사상 서적이 아닌 아동용 만화책이었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한 줄로 요약되는 봉이 김선달이야기가 무려 15권짜리 만화책으로 나와 있었다. 민족의 세시풍속과 조선어사전도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그의 눈길을 끌었다. 그 책들은 인천공항 검열을 다 거친 것들이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무려 10여년이 지난 후에 이 책들을 이적표현물로 규정한다.

 

2006615일에 광주 무진중학교에서 남북공동수업이 열렸다. 이 자리에 남과 북, 그리고 해외 교사 500여 명이 무진중학교 체육관에 모여 수업을 참관 했다. 그때 북에서 참여 교사들에게 북한 아이들이 배우는 노래와 영상 자료라며 참고자료를 건네주었다. 이 또한 이적표현물로 규정이 된다.

 

대법원은 십 수년이 지난 20201월, 북한의 어린이용 만화책 등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교사 4명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남북교육교류가 활발했던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합법적인 방북활동을 해왔고 전교조 통일위원회 활동을 했던 박미자 교사를 포함한 교사 4명은 그렇게 다시 교단에서 쫒겨났다.

 

제자들이 부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013년에 기소되고 20151,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같은 해 421, 4명의 교사는 직위해제가 된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의 압박으로 징계성 직위해제를 당한 거다. 그때가 4.16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추모 1주기 수업을 하고 일주일만이다. 박 교사가 학교를 떠나던 날, 학교 아이들은 복도에 물결처럼 쏟아져나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박 교사는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교육자로서의 삶을 통틀어서 그렇게 감격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없었다라고.

 

압수수색에 이은 기소와 직위해제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기소되기 전, 4명의 교사에 대해 국정원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던 20122월은 박 교사가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지내던 때였다. 남북교류가 활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남북교육교류의 길을 열었던 교사들에게 바뀐 정권은 교단의 삶마저 앗아갔다.

 

▲   박미자 교사는 올해 초 세번째 해직을 당했다. 국가보안법 7조 5항에 담긴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인한 유죄판결이 확정되면서다.   © 김상정


박근혜 정부 출범식을 앞둔 20132월 초 전교조 조합원 4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중 이적단체 구성, 교류협력법 위반, 회합통신법 위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를 들어 불구속기소했다. 20201월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8년여간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는 검찰 스스로 공소를 취하했다. 3심 최종 판결에서 대법원이 맨 마지막에 적용한 것은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였다.

 

세 번의 해직, 다시 교단에 서고 싶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남과 북이 다시 만났지만, 교사들의 직위해제 기간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2018101일 복직되었다. 이듬해 31일에 박 교사는 2015년 당시 해직되었던 인천 청천중학교로 가면서 다시 교단에 서게 됐다. 4년 만이다. 해직되었을 때 담임을 했던 중학교 1학년 제자들은 그 사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그의 복직 소식을 듣고 1학년 1반 교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교실 칠판을 글로 가득 채우며 지우지 말고 후배들에게 꼭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너희 좋은 담임 만난 거 축하해, 우리 선생님은 모든 학생을 동그랗게 바라보는 걸 좋아해.”라는 글을 쓰더니 이내 책상을 원형으로 배치해놓고 갔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그렇게 지낸 1년은 선물이 됐다. 재판이 언제 잘못될지도 몰라서, 언제 아이들 곁을 떠날지도 몰라서, 재판이 잘 돼서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1년을 보냈다. 그만큼 아낌없이 아이들을 사랑했던 1년이었다.

 

번의 해직. 89년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 2013년 국가보안법 1심 유죄판결에 따른 직위해제 이후 해직, 그리고 2020년 대법확정판결에 따른 해직. 그때마다 제자들과의 이별은 그에게 아픔이었다. 첫 번째 해직 때는 방송조회를 통해 제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가 이렇게 안타깝게 헤어지는 것에 대한 부당한 사실은 기억하되, 우리는 잊어라.우리가 학교를 떠나는 것은 여러분 옆에 계시는 선생님들을 믿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 옆에 계신 선생님과 의논하고 잘 자라주길 바란다.”라고 말하고 떠나왔었다. 그때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며 당시 공황중학교 교사 전원이 전교조 후원회원회에 가입했다. 두 번째 해직 때는 제자들은 그에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불러줬다. 그러나 세 번째 해직에 대해선 제자들이 아직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촛불 혁명을 통해서 들어선 정권 아래에서도 선생님과 헤어질 수 있다라는 얘기를 그는 학생들에게 차마 할 수 없었다.

“2004년도에 남북교류가 한창이었던 시절의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끌어온 것도 억울한 일인데 이 정부에서, 이 사법부가 그렇게 판결을 낸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 27일은 학교 종업식을 한 날이다. 그는 학생들이 다 가고 텅 비어 있는 교실 사진을 찍고 교문을 나오면서 마지막 제자들일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도 했다. 세 번의 해직을 당했던 그는 번째 복직을 해서 다시 제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교단에서 교사를 내몬 국가보안법 75

국가보안법 75,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가 적용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그는 마음이 참담했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면 그 안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유투브에는 실제로 그 안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 평양에 놀러오라고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올라와 있고 120만명이 넘게 봤다. 이런 시대에 북한에서 나온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묻는 지금의 법 체계가 그는 안타깝고 쓸쓸했다.

 

남과 북의 교사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공식 행사에서 주고 받은 자료들까지 북측에서 제작한 노래 가사가 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이 되었다. 읽어야 할 책과 읽지 않아야 할 책,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법으로 규제되어 있는 국가보안법 체계를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과 북의 교육자 교류가 다시 시작되고 평화통일은 우리 사회의 염원이기도 하다. 박 교사는 교사들에게 교육활동에서 이적표현물 혐의를 적용하는 문제는 평화통일 교육을 위축시키고 가로막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평화통일 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75항 폐지운동을 우리 사회가 해야 한다. 제자들하고 마지막 헤어지면서 다짐 한 것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라는 것이다. 그 해야 할 일이 이것이다.

 

▲  박미자 교사가 지난 한해 동안 지낸 학교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상정


앞으로 교육현장은 이 조항에 얽매이지 않고 평화통일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통일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대립의 시대가 아니고 전쟁도 반대하고 상생의 시대를 여는 거다. 작게는 가족에서, 이웃, 남북한, 세계 평화통일 교육은 다름에 대한 존중이다. 평화통일교육은 아이들에게, 우리 교사에게 학부모에게 삶을 바꾸는 교육이며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라고 생각한다.”

 

정년 퇴임 3년을 앞둔 그는 불꽃같이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지난 1년을 제자들과 후회없이 산 것처럼 또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한다. 교사들이 더 풍부하게 맘껏 학문을 연구하고 평화통일 시대를 상상하며 아이들과 손잡고 함께 북한에 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평화통일 시대에 교육자로서의 역할, 남한 교사가 북한에 가서 교육활동을 하고 같이 교재 연구도 해보면서 교류하는 세상을 그려본다는 그는 먼 하늘을 바라본다.

 

우리 국어샘은 간첩 아니야.”

2013년도 이야기다. 수업을 하고 나왔는데 학생들이 달려왔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애들이 싸워요수업을 들어가는 반 아이와 들어가지 않는 반 아이가 엉켜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싸움을 말리고 나서 왜 싸우냐 물었더니 얘가 국어샘이 간첩이라고 말을 해서 제가 우리 국어샘은 간첩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싸움이 났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선생님이 미안하다. 선생님은 간첩이 아니고 남과 북을 오가면서 남북교육자 행사를 진행했던 사람이다. 재판에 잘 대응하고 결과도 잘 받아서 이런 일이 없도록 오해를 풀겠다.”라고 말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가 다시는 이런 일이 교육현장에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한 계기가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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