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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나(苦勞那) 시대 선생전(先生傳)

"지금 교육을 하라는 것이오, 말라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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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우 · 서울 명일여고
기사입력 2020-07-14

코로나19로 교육현장도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눈 뜨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업무 내용과 온라인 수업에서부터 방역까지 모든 책임이 고스란히 교사에게 떠넘겨지는 현실이다. <교육희망>에서는 이를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한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한양 고을에 선생(선생은 교사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 명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으며, 수업과 평가 혁신에 관심이 많아 늘 아이들이 스스로, 함께, 즐겁게 배워 나가도록 수업을 설계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에 역병이 돌아 수차례 개학이 연기되다가 전례 없던 온라인(瘟羅忍) 개학을 맞았다. 그는 급히 수업 영상을 촬영하고 자료(활동지)를 제작해 구글(求㔕) 교실을 운영했다. 적어도 향교 이상의 중등 교육에서는 성취 목표 달성이 중심인 과제 제출형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해서다. 이후 격주 등교 및 온라인 병행 수업이 이루어지자 그는 하릴없이 이론 강의와 학생 활동을 분리하여 진행했다.

 

 어느 날 예조 판서가 이를 알고 크게 노했다. "아니 그 선생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물건이건대, '게이-에두(揭理-殪頭, K-에듀)'에 먹칠을 한단 말이냐. 2학기부터는 당장 멋있어 보이는 실시간 쌍방향으로 운영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당장 잡아다 '혁신'을 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지방관은 명에 따라 그를 불러 강제 연수 및 컨설팅을 실시하며 지침을 내렸다. 

 

 

 5월 보름 하루동안만 '스승'이라

 "무릇 '선생'이란 그 명칭이 가지가지이다. 서당이나 향교, 서원 등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敎師)'라 하고, 학교에서 공문과 잡무를 처리하는 사람을 '교사(校使)'라 한다. 5월 보름 하루 동안은 '스승'이라 부르고, 방학 때는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루팡(淚乓)'이라 부른다. 젊을 때는 모두가 사랑하는 '동네북'이 되고, 나이 들면 모두가 칭송하는 '철밥통'이 되니, 이 모든 걸 다 감내해야 한다.

 

선생은 학교당 연간 5,000건이 넘는 예조 및 지방 관청의 공문을 접수·처리해야 하며, 그보다 많은 공문을 기안하고 시행 운영 · 보고해야 한다. 고로나 시대에는 방역의 최전선에서 전사가 되어야 한다. 각종 마스크, 소독제, 체온계 등의 물품을 준비해야 하고, 모든 학생이 매일 등교 전 자가 진단을 하도록 전화해야 하며, 이 통계를 매일 보고해야 한다. 특히 의원님들의 긴급 자료 제출 요구는 수업 도중이라도 내려와서 처리해야 하는데, 그 교육적 목적이 매우 심대하다. 일례로 특정 학교 예산의 8년치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거나, 전국 학교의 농구공 보유 현황을 공방별로 구분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이 밖에도 수시로 보내는 예조와 지방 관청의 매뉴얼과 지침을 준수해야 하며, 일요일 저녁 뉴스로 방송되는 어떤 정책이라도 당장 월요일부터 시행해야 한다. 

 

 역량있는 교사란 모름지기…

 이러한 일들을 모두 완수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량 있는 교사', '학생들에게 헌신적인 전문가', '우리 사회의 숨은 영웅'이란 칭찬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 황당한 일을 시켜도 참고, 해야 하며, 부당한 민원이라도 사과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따르지 못한다면 엄중 문책을 당할 것이다."

 이를 들은 선생은 좋지 않은 안색으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선생이 정녕 이런 것이란 말입니까? 내가 알기로 선생이란 아이들의 인격 도야를 돕고, 자주적 생활 능력 및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사람인데, 선생이 이런 일을 해야 한다면 아이들은 누가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지방관은 한 번 노려본 후 다음과 같이 지침을 고쳤다. 

 "선생은 수시로 개정되는 교육과정을 얼음판에 표주박 구르듯이 줄줄 외워야 하며, 이를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운영하되 다르게 재구성해야 한다. 한양 기준 '백만 개의 교실'에서 백만 개의 서로 다른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각 교실에서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수업과 평가를 혁신하되, 예조 판서 고시의 세밀한 교과별 성취 기준과 내용을 벗어나서도, 지침으로 내려오는 평가 항목과 비율을 어겨서도 안 된다. 또 고로나 대응 학교 교육 매뉴얼에 따라 온라인 수업을 하되 온라인으로 수행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등교 때에는 배움 중심 수업을 진행하되 토의토론 등의 모둠 활동을 해서는 안 되며, 모든 활동에서 학생 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학생의 이동을 최소화하되 수준별 수업 및 교과교실제를 운영해야 하며, 실험 및 실습 교육을 내실화 있게 운영하되 실험실 및 특별실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 

 

 수천 건 수기정정도 하라면 척척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과 학생의 활동은 학생별로 모두 다르게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야 하는데, 올해부터는 교사별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아이들의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모두 기록하여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 외 법령에 의한 30여 개 주제(안전, 성, 생명 등)의 범교과 교육을 연간 160~180여 시간(예조와 지방 관청의 요구까지 더하면 연간 210시간 이상)을 실시해야 하고, 같은 주제로 동료 교사와 학부모 교육도 수십 시간을 해야 한다. 학교별로 독서· 인문· 영어· 도서관· 평화교육 등 특색 있는 수업과 스포츠클럽, 청소년 단체 등을 운영해 매년 각 프로그램에 따른 50~100여 개의 시상을 해야 한다. 각종 프로그램 및 대회를 열어 시상하되 대회라는 명칭을 써서는 안 된다. 올해부터 바뀐 지침을 소급 적용하여 전교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수천 건의 학교명을 모두 '교내' 혹은 '○○'으로 정정해야 한다. 물론 정정할 때에는 생활기록부 정정 대장에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결재를 맡아야 한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모든 교육 활동은 사전에 기본 계획과 세부 계획을 수립해 결재를 득하고, 운영 후에는 공문으로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선생은 교육의 전문가로서 이 모든……."

 

 선생은 그 지침이 완성되기 전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만두시오. 그만둬. 정말 허무맹랑하구려. 지금 나보고 교육을 하라는 것이오? 말라는 것이오? 내 이 시간에 차라리 수업 준비를 하러 가야겠소." 선생은 말을 마치자마자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가면서 머릿속으로 다음 시간에 수업해야 할 이근삼의 희곡 「원고지」 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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