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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해직교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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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창·퇴직교사
기사입력 2021-01-05

“31년을 기다렸다.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 1인 시위. 1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하루 종일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도 매일 서 있는 것도 아닌데 힘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혹한의 추위라고 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로 추운 것도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거침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소 불안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조심하면 피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다고 되겠어.”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복직의 가능성은 없고, 전망은 보이지 않을 때 자주 들었던 자조 섞인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여 만인 1994년에 복직이 됐습니다. 그러나 전교조 합법화는 요원했습니다. 1999년에 합법화가 됐습니다. 저절로 복직된 것이 아니었고, 시혜처럼 합법화된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의 크고 작은 피눈물 나는 투쟁의 산물이었습니다.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었고, 우리와 연대한 시민 단체가 응원한 결과였습니다.

 

 

▲ 1999년 1월 전교조 합법화 법안 통과에 항의하는 의원들  © 교육희망 자료사진


바쁘다고.”

그리 바쁠 것이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제 같은 오늘이고, 오늘 같은 내일의 연속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고 거리두기가 2.5 단계로 격상됐지만 하루에 한 번 씩 산책을 나가고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사람 북적이는 시장을 겁도 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정해 놓고 시간 맞춰 사는 생활이 아닐진대 시간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절박함.”

처지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뀐다고 하지요. 전교조 창립 아니고서는 교육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만든 전교조를 사수할 때도 그랬습니다. 전교조 사수를 위해 학교에서 쫓겨날 때도 그랬습니다.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절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사가 그럴 수 있느냐는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주눅들지 않고 싸웠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싸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 이웃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소상공업자, 자영업자,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 희망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들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아니더라도, 일을 하다 이 땅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 문턱을 아직도 넘어서지 못 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수장된 채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식을 잃었지만 더이상 똑같은 일들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자식 잃은 유가족이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청와대 앞에서는 진실을 밝혀 달라는 시위를 하는데. 그 옆에서 우리들의 문제를 꺼내 들고 서 있기가 좀 민망했습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미안함.”

70 후반의 노구를 이끌고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계시는 김용택 선배 선생님을 보면 그렇습니다. 역시 70에 이른 서울의 조희주 선생님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와대 앞을 지키는 것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고물 줍는 신 노인을 보는 순간 문학적 수사인 줄 알았습니다. 신 선생님께서 지금 처한 현실인 것을 알고는 아득했습니다. 그렇게 사시는 신맹순 선생님을 생각할 때는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 위기에 처한 교사들이 당시 정부청사(현 정부서울청사) 담벼락에 정원식 당시 문교부 장관에게 항의의 메시지를 적은 꽃을 매달아 놓았다. '나는 벽에 똥칠할때까지 교단에 서고싶다'라고 적힌 글이 눈에 띈다.  © 교육희망 자료사진



1989, 군부독재 정권과 당당하게 맞섰던 장년의 교사들은 정년이 되어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를 떠난 이후 오랫동안 투병을 하다가, 또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상을 등지는 동지의 비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그리고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상회복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도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겠지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원상회복 투쟁이 되었습니다.

 

전교조 해직교사 1500여 명. 교육 활동의 방패막이로 만들었던 전교조였습니다. 전교조의 방패막이로 늘 앞장섰던 해직교사였습니다. 복직 이후에도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늘 불이익을 가장 앞장서서 당했던, 고단했던 삶을 살았던 해직교사였습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가장 먼저 원상회복으로 명예를 회복시켰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시 이들에게 원상회복 투쟁 전면에 나서 달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원상회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린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면 봄이 오는 것처럼 원상회복이 저절로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처절하게 싸우지 않고 저절로 오는 원상회복은 없을 것입니다.

 

 

▲ 퇴직교사들이 청와대 앞에서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진행중이다. 사진 가운데 유기창 퇴직교사.   © 전교조 서울지부


 

1인 시위에 자주 참여하지 못 하는 이유?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매주 월요일 그 시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는 청와대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처절하게 싸우겠다는 투쟁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거리에 먼저 서 있는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입니다. 

 

다른 동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똑같은 마음으로 그곳에 서 있을 것입니다. 세월호 진실이 조속히 밝혀지기 위해 처리돼야 할 법들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원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원하며, 그리고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원하며. 서울에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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