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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별없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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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기사입력 2021-04-01

"성소수자라서 죽었다."
이 문구는 장애 운동에서 사용하는 구호와 닮아 있다.
"장애인이라서 죽었다, 가난해서 죽었다."

  '장판(장애운동판의 별명)'에서 3~4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사들의 기일이 많은 달이다. 따사로운 계절을 앞두고 왜 이리도 우리의 곁을 떠난 이들이 많을까. 장애운동 5년 차, 어느덧 내게 3월은 새로운 시작의 설렘보다 떠나간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숙연함이 가득해지는 시기로 다가온다.

 

 무심코 바라보던 핸드폰 화면에 변희수 하사의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 알람을 무방비 상태로 마주하게 되었다. 김기홍님의 죽음을 접한 지 2주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죽음은 애도조차 어려웠다. 당시 나의 감정을 날것으로 표현하자면, '심장을 꺼내서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정할 수 없는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웠고, 동시에 나의 분노를 있는 힘껏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나는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도 몰랐다. 며칠이 지난 뒤에서야, 상담 선생님을 만났을 때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억울해서 도저히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 했다. 

 

 "성소수자라서 죽었다." 이 문구는 장애 운동에서 종종 사용하는 절절한 구호와 닮아있다. "장애인이라서 죽었다, 가난해서 죽었다." 장판에서 1년 중 규모가 가장 큰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투쟁을 선포하는 전국장애인대회는 매년 3월 26일, 장애여성 최옥란 열사의 기일에 진행한다. 최옥란 열사는 중증장애 여성이었기에 노동할 수 없었고, 노동할 수 없어서 빈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기초생활수급비 28만원의 월 소득이 전부였던 그녀는 한 달 수급비 전액을 복지부 장관에게 반납하며 현실성 없는 제도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빈곤과 해결할 수 없는 생계 문제로 그녀는 결국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꼭 이뤄달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최옥란 기일을 시작으로 시작하는 420 투쟁은 최옥란을 포함하여 수많은 죽음을 추모하며 이어진다. 송파세모녀, 정태수, 최정환, 최옥란, 송국현, 권오진, 황정용... 그들의 이름을 읊을 때마다 주류 사회가 얼마나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냈는가 생각한다. "아직 적절한 제도가 없어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서." 이미 곁을 떠난 우리의 동료들의 죽음 앞에 수십 년째 변하지 않은 채 붙어 다니는 수식어구들이다. 주류 사회는 그 몇 마디 변명을 앞세운 채, 마치 그 죽음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듯,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잘만 굴러간다. 슬픔과 애도의 몫은 결국 또 남아있는 소외된 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또 3월이 지나갔다. 이미 예정된 열사들의 기일과 추모제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죽음들까지 마주하며 우리는 3월을 살아내었다. 살아남은 우리가 지내게 될 이 봄날들은 매년 이렇게 차가울 수밖에 없을까? 이제는 이별 없는 봄을 맞이하고 싶다. 

 

▲ 김수경 -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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