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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번호, 성별과 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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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일·인천동수초
기사입력 2021-04-29

 
 

 

초등학교 3월 첫 주 학생들은 친구들과 자기 키를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자기 머리끝에서 친구 머리까지 손바닥으로 허공을 가르면서 비교하다가 기뻐하면 상대방 친구는 못 믿겠다는 듯이 자기가 주체가 되어 키를 잽니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 자기가 크다며 실랑이가 붙고 지나가던 친구에게 누구 키가 더 큰지 결정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둘에게 등을 맞대고 서라. 까치발 들지 마라. 단단히 일러둔 다음 결정해줍니다. 한 명은 승자가 되고 다른 한 명은 패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정한 키번호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학생들은 체육 시간에 줄설 때, 교실 자리를 배정할 때, 체험 학습을 갈 때, 교실을 이동할 때 등 줄을 서야 할 때면 언제나 묻습니다. "선생님 키번호로 서요 출석번호로 서요?" 그리고 이후에는 내가 시킨 적이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남자 따로 여자 따로 줄을 섭니다. 왜 이런걸까요? 키와 성별이 인간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도 되는걸까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어 올해는 3학년 학생들과 다모임(학급회의)을 합니다. '급식실을 가거나 이동 수업을 갈 때 어떻게 줄을 서는 것이 좋을까?'가 다모임 주제입니다. 앞에 서거나 뒤에 서는 것은 자신들의 이권(?)이 달린 문제라 이렇게 하면 누가 손해다, 저렇게 하면 누가 손해다 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그렇게 만든 규칙이 이렇습니다. '성별을 나누어 키 순서로 두 줄로. 공평하기 위해 하루 단위 혹은 일주일 단위로 한 칸씩 앞으로 오기.' 맙소사. 키와 성별.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학생들이 어째서 이런 결론을 내릴까요?

 

어찌보면 너무 당연하죠. 학교에서는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여학생과 남학생을 나누어 번호를 부여합니다. 성평등 이야기가 나온 뒤로는 해를 바꿔 남학생과 여학생 앞뒤 번호를 바꾸죠. 이렇게 번갈아 해야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번갈아 앞을 차지하게 해주면 평등한걸까요? 우리 학교는 몇 년 전부터 출석번호를 성별에 관계없이 정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지 않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번호를 가지고는 성별을 알 수 없다. 또 이름으로 어떤 성별인지 확신할 수 없다. 등등입니다.

 

러나 더 큰 불편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학교가 나서서 성별에 따라 키에 따라 번호를 부여하면서 학생들에게 성 역할 고정관념을 길러주고 성별을 나누어 사고하게 하고 외모를 가지고 사람을 분류하게 만드는 것에 앞장서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교사인 내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가부장제로 이끌고 있지 않은가 뒤돌아보게 됩니다. 나한테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에,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3학년 꼬마들에게 그런 기준을 준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출석번호부터 어떤 기준으로 순서를 정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날을 저는 교사 시절에 꼭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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