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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퇴진' 시국선언 이후 수업하다 끌려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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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철·퇴직교사
기사입력 2021-05-04

연속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김광철(66)은 서울문창초(1976) 초임 발령을 받았고, 서울신시흥초에서 근무하던 1991강경대 사건시국선언 대표를 맡아 해직이 되었다. 1994년 서울신성초로 복직한 이후 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자카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초록교육연대>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생태, 환경교육운동과 탈핵, 탈석탄 운동에 앞장섰다. 혁신학교 운동에 매진하다가 서울신은초에서 정년퇴임(2019)을 했다. <애기똥풀><제비콩을 심으며>라는 시집과 <교실 속의 생태·환경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편집자주

 

1991426일 등록금 인하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명지대학교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사복 경찰)의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선 교사들. 사진 속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김광철 퇴직교사이다.   © 김광철 퇴직교사 제공

 


이 사건은 노태우 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경찰이 학생을 때려 숨지게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로 인해 성난 민심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였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이에 항의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시위와 성명서 발표가 끊이질 않던 중 항의 시위를 하던 전남대 박승희 학생이 분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김영균, 천세용 학생, 전민연 사회부장 김기설, 윤용하 노동자 분신이 꼬리를 물었다.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의문의 죽음, 시위 도중 백골단의 토끼 몰이식 진압으로 김귀정 학생이 또다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5~6월 시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생들은 돌과 화염병으로 백골단에 맞섰고 시위, 집회, 농성이 극에 달했다. 한편 검경은 김기설 씨의 유서를 강기훈 씨가 대필하였다고 조작하여 시국의 반전을 꾀하였다. 실제로 이 사건은 당시 민주화운동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결국 조작임이 드러난 바 있다.

 

▲ 노태우 정권 퇴직 시국선언 발표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자 교사들은 다시 교사시국선언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서울교사결의대회를 진행했다.   © 김광철 퇴직교사 제공



이에 분노한 교사 6400여 명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노태우 정권은 퇴진하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서울 초등 부지회장을 맡고 있던 나는 서울의 8개 지회 대표들과 함께 강경대 군의 시신이 안치되어있는 연세대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일보는 시국선언 대표인 나를 인터뷰하여 2면 전면에 실었고, 조선일보도 서울 초등의 김호정 교사를 취재하여 교사 시국선언 사건을 크게 보도하였다. 노태우 정권은 교사들의 정권 퇴진 요구는 집단행동이라며 징계 위협과 함께 시국선언 철회를 강요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분신 정국 속에서 교사들의 징계는 미루어지는 상황.

 

이때 정원식 당시 총리서리가 한국외국어대학교 방문길에 분노한 대학생들에게 밀가루와 계란 등을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정원식 총리 서리는 이후 전교조 대량 해직을 이끈 인물이다.)보수언론의 편파 보도,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노태우 정권은 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수배, 검거하는 등 새로운 공안정국으로 돌변한다. 

 

방학 중인 8월이었지만 장학사와 교감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개학 후에도 교육청 초등과장이 학교로 찾아와 시국선언을 철회하면 승진 등 뒤를 돌봐주겠다며 회유하기도 했다.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10월 초 어느 날 교장이 나를 불렀다. ‘직위해제 통지서와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를 들이밀며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무시하고 학교에 출근하여 교실로 들어갔다. 교장은 교감, 학교 용인 아저씨 등을 끌고 우리 교실로 몰려왔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와 내 사지를 붙들고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3학년 아이들로 교실은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갔더니 운동장에 학부모와 장학사 등 100여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교장은 학부모회 임원들을 동원하여 교문을 걸어 잠그고 나의 출근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우리 반 학부모들이 몰려와 촌지도 안 받는 훌륭한 선생님을 왜 내쫓나?”며 닫힌 교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게 했다.

 

 

끝내 서울시교육청 징계위는 해임을 의결하여 나를 학교에서 내쫓았다. 당시 교사 시국선언으로 전국에서 5명의 교사가 해임되고, 다수의 교사들이 정직, 감봉, 견책 등 다양한 징계를 당했다. 아침마다 출근을 위해 학교로 향하던 나는 교문 앞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출근을 저지하던 교감과 용인 아저씨들을 만나야 했다. 그러면 나는 교문 앞에 과일 포장지를 깔고 눌러앉아 농성에 들어갔다. 전교조 집행부와 해직교사들은 번갈아 찾아와 동네 학부모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는 선전전을 하면서 출근투쟁을 도왔다. 날씨가 추워지고 방학이 다가오면서, 나는 40여 일간의 출근투쟁은 끝내고 기약 없는 해직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7년 국가폭력에 저항했다고 민주화 유공자라는 증서를 받았다. 정부가 잘못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 정부 폭력으로 해직된 데 대하여 원상회복 시키고, 그 때문에 생긴 손해에 대해서 보상이나 배상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 김광철 퇴직교사의 민주화운동관련자 증서  © 김광철 퇴직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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